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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컬럼86 아버지의 시 한 수 운영자 202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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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에 간행된 계사유타(溪社遺唾)는 규장각 서리를 지낸 지덕구(池德龜, 1760~?)가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 지도성(池道成, 1738~1761)이 세상에 남긴유일한 시() 한 편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출간한 시집이다.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그는 스무 살에 우연히 아버지 친구인 김시벽의 책자에 끼워있던 아버지의 시 한 수를 얻게 되었다. 젊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작품이었던 선친의 시를 보고 감격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둘도 없는 흔적을 받은 뒤로 26년의 세월 동안, 그는 그 작품을 소중히 보관했다가 선친의 흔적을 백에 하나도 수습하지 못한 것이 뼈에 사무친 나의 한이다. 요행히 이 하나를 얻었으나 잘못하여 이마저 사라져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자식 된 도리일까?”라고 자문자답을 한 그는 아버지의 시 한 수를 영구히 지킬 방법으로 거의 10년 동안 차례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친척과 친구를 찾아뵙고 사연을 말씀드리고, 아버지를 기리는 시를 얻었다. 선친이 남긴 짧은 시 한 편을 부둥켜안고 아버지의 옛 친구를 찾아다니는 지덕구에 대한 대견함과 연민, 그리고 그 기특한 정성에 감동되어, 그를 만난 모두가 40년 묵은 기억을 더듬어 감회어린 시를 지어주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자 지덕구는 그렇게 모은 작품을 온갖 정성을 기울여 직접 필사하여, 아버지가 시를 쓴 을해년(1755)60주년이 되는 1815년에 출간하였다. 편집자의 정성이 묻어나는 이 책에는 지덕구 자신이 두 편의 시를 쓰고 세 아들의 시도 수록하였는데, 나이 어린 막내아들의 시는 우리 아버지 나를 불러 책상 앞에 오라시더니, 할아버님 남긴 시 한편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울면서 말씀하시네. 손으로 베끼는 고충을 왜 저버리랴? 세세토록 전하여 잘 보관해야지.”라는 어린이다운 소감과 필치로 아버지의 비원에 공감하는 심경을 담아내고 있다(성균관대학교 안대회 교수).

 

태종대왕 후손들의 모임인 헌릉봉향회 회장(19891995)과 태종대왕 10남 희렁군파종회 초대 및 2 회장(19781982)을 지내신 나의 선친께서 생전에 남기신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의 화목을 도모하는 숭조돈종(崇祖敦宗)에 남기신 발자국을 찾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하던 나에게는 더없이 가슴에 와닿는 글이다. 선친의 칠순잔치에 내가 수명은 남한강처럼 오래오래 누리시고, 복은 북한산처럼 높이 높이 쌓이옵기를(壽如南漢江, 福如北漢山)”이라는 한시(漢詩)를 짓고, 막내아들이 붓으로 써서 액자에 담아 드리니 그렇게 대견해하시던 선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드니 해리스는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습관과 따뜻한 추억을 남기라.”고 하였는데,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남기신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후손들에게 전승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경산 현령을 지낸 박종채(1780-1835)는 아버지 연암 박지원이 생전에 남기신 자취를 후손에게 남기려고 나의 아버지라는 글을 썼다. 아버지는 서너 살 때 이미 조숙하여 옛사람들이 하던 대로 부모님의 베갯머리에서 부채질을 하고 이부자리를 따듯하게 하셨다.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냇가에 앉아 슬픔을 이기지 못하시고 시를 지어 애도하셨다.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를 닮았나? 아버지 생각나면 형님을 봤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그 누구를 보나? 시냇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보네(연암이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며(燕巖憶先兄). 아버지의 제자 이덕무가 이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연암 선생의 시를 읽고 두 번 눈물을 흘렸다. 처음은 선생께서 누님의 상여를 실은 배를 떠나보내며 읊은 시다. ”떠나는 사람 정녕 기약을 남기고 가도, 보내는 이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거늘, 저 외로운 배 한번 가면 언제 돌아올까? 보내는 나는 강가에서 홀로 돌아오네.”(연암이 지은 큰 누이 묘지명).

자식들 모르게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시던 아버지의 아픈 한 시대는 그 흐린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아버지란 그러나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분이며, 돌아가신 후에도 보고 싶은 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버지는 위로 올라갈 때 언제나 사람들에게 인사해라. 네가 내려갈 때 그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테니. 네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지 마라.”고 항상 말씀해주셨다(차동엽 신부의 교황의 10가지에서). 가을이 와서 황금빛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을 때면 동내에서 제일 넓어서 비행장이라고 불리던 우리논 두렁에 앉으셔서 농부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 여름에 아무리 여러번 논에 거름을 주었다고 우겨도 가을 수확을 해보면 거짓말은 드러나기 때문이다.”고 하시며 정직하고 당당하라고 일러주신 선친의 말씀을 한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고 내 자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다.

 

데이비드와 엘사 홈피셔(David & Elsa Hornfishe)자녀를 성공시킨 아버지들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주고 싶은 7가지 덕목인 야망, 용기, 헌신, 믿음, 시각, 책임감, 자아 수련에 대한 성공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나갔다. ‘미국의 아버지상()’에서 로버트 그리스월드는 성공적인 아버지 상을 정의하기를 자식들이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위대한 겟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나는 항상 이런 경우 아버지라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이웃이 빌려주지 않았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을 때 아버지는 두말없이 빌려주었다. 이웃이 가고 난 뒤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 사람은 우리에게 낫을 빌려주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왜 호미를 빌려주신 겁니까?”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아들아, 그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이자 증오란다. 상대방의 행동에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사랑이란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으니?” 탈무드에 나오는 글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한없이 부럽다

백운 이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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