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하여 : 비바 파드레(Viva Padre)

인조 때 문신 조석윤(趙錫胤)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갔다.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의 아버지 조정호에게 아들이 노량진에서 썩은 배를 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배가 중간에 파선되어 배에 탄 사람들이 다 빠져 죽었다고 일러주었다. 아버지는 “우리 아이가 어찌 썩은 배를 탔겠나? 잘못 봤겠지”라며 태연하였다고 한다. 배에 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해도 기다려 보자며 침착했다. 과연 얼마후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전후 사실을 묻자 아들이 처음 그 배를 타기는 했는데 위태로운 것을 보고 다른 배로 옮겨 탔다고 했다.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데도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들이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며 아들을 믿었다. 평소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태로운 곳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고 가르쳤고, 그 아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어겼을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믿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켰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란 말에는 ’교사‘란 뜻도 포함된다. 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는 “현명한 아버지는 백 명의 교장보다 낫다.”고 했다. 현명하고 용기 있는 아버지는 자녀의 성격을 올바로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장차 멀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야 할 자녀에게 “나를 따르라!”는 명령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걷자!”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우리들에게 최초의 선생님이었지만 늘 가장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敎師像)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완벽하기를 기대하며 성장하지만 가엾은 부모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때 실망하며 화를 내는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훌륭한 부모만을 공경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다. 윌스트리트 저널지가 최근 미국인 1천 6백 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메리칸 드림(America Dream) 설문조사결과 응답자의 95%가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우리는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인가? 많은 한국의 아버지들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어서 무면허 운전자처럼 아버지의 역활을 수행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은 아버지가 된다. 어린 시절에는 내세울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를 나이 들어 스스로 부모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길을 걸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2002년 9월 동아일보에 실린 ”아버지란 누구인가?” 라는 작자 미상의 시가 오늘을 사는 아버지들의 가슴을 울린다.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자식들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직장은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 다운가?"라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자녀들의 생각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진다. 자녀들은 어릴 때 이버지는 무엇이나 할 수 있고,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춘기가 오면 아버지도 모르는 것이 많고, 세대차이가 난다고 저항한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4만여 명의 비영어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2004년 영국문화원이 실시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묻는 설문에 1위는 어머니였다. 다음으로 열정, 미소, 사랑의 순서로 이어졌으나, 아버지는 70위 안에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들이 들으면 입맛이 씁쓸하겠지만 그것은 색칠하지 않은 사실적 통계다. 어느 사회학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버지 없는 사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적지 않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무참히 짓밟히고, 자녀들은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가? ‘미국의 아버지상’에서 로버트 그리스월드는 성공적인 아버지 상을 정의하기를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위대한 겟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나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나는 항상 아버지의 판단을 염두에 두었다. 아버지라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습관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따뜻한 추억일 것이다.“ 라는 시드니 해리스의 말처럼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주고 일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20년이나 걸린 귀국길은 험난했다. 그가 출정할 때 갓난아기였던 아들 텔레마코스가 스무 살 청년이 되었을 때,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가라.”라고 말한다.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라는 말이며, 도전과 모험을 통해 삶의 주체로 나서는 어른이 되라는 뜻이기도 하다.

2015년 KB금융의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언제인가요?” 문구가 들어있는 ‘하늘 같은 든든한 아버지’ 라는 광고가 공개 된지 23일 만에 1천만 뷰를 돌파한 적이 있다. 생후 40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아이와 관련된 질문에는 미소를 띠며 답하다가 아버지와 연관된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쏟는 남성들의 모습을 그렸다.

자식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으며 자란다. 아버지가 솔선해서 모범을 세우고 배려하며 자녀를 존중해주면, 따로 가르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자식은 제 일을 스스로 하고 아버지를 따르며 존경하게 될 것이다. 열 명의 자식을 기르는 아버지가 한 사람의 아버지도 부양하지 못하는 열 명의 자식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우시던 아버지의 아픈 한 시대가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패기　넘치던　젊은 날의　당당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아버지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인생의 무대에서 자신의 양심이 박수를 보내는 아버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비바 파드레(Viva Padre)‘ 아버지 만세!

백운 이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