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컬럼81 설날과 화목한 가정 | 운영자 | 2025-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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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릴 때 불렀던 동요가 그리 워지는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설날이 오면 나는 박동규 교수의 ‘설 날’ 이라는 다음의 글을 기억한다. 내가 일곱 살 때 설날을 며칠 앞둔 어느날 놀다가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방에서 보따리를 싸고 계셨다. 어머니는 갑자기 보따리를 싸던 손을 놓고 벽 쪽으로 돌아앉아 우셨다. 나는 놀라서 “엄마 왜 울어?” 하니 어머니는 “아무일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보따리를 싸시다가 우셨다고 아버지께 일러바쳤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시면서 “왜 울었어요?” 라고 하시니 어머니는 “고향에 가야 하는 데 가져갈 것이 있어야지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 댁에 가져갈 것이 변변찮아서 속상했던 것이었다. 우리가족은 다음 날 고향행 기차를 타고 저녁 무렵에 고향집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은 후 어머니는 할머니 옆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할아버지 안경, 삼촌 양말 그리고 할머니를 위한 토시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를 위한 토시는 손으로 누벼 만든 것이었다. 할머니는 토시를 손에 끼어보시더니 갑자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네가 만들었구나. 고맙다.” 하시면서 어머니를 껴안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껴안자 “좋은 것을 사드리지 못해서” 하시면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셨다. 한동안 서로 손을 붙들고 눈이 붉어진 채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만 했고, 어머니는 “좋은 것을 못드려서”라는 말만 하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골이 깊다고 하지만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은 화목한 가정이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쓴 ‘이목구심서‘(耳目口心)에 내가 갑신년 섣달 그믐날 밤 시를 짓다. 세속에서 하는 대로 덕담을 하고 사람 보면 웃는 얼굴 축하한다네. 소자의 소원은 무엇이던가? 내 어머님 폐병이 낫는 것일세. 폐병은 기침병이다. 지금도 슬픈 생각이 들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머님의 기침 소리가 은은하게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이에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등잔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래서 또 한 수를 지었다. 큰 누이는 흰 떡을 시루에 찌고, 작은 누이는 붉은 치마 다림질 했지. 막내 아우 형님에게 절을 올리고, 그 형은 어머님께 세배룰 했네. 설날을 맞이하여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해 온 가족들이 모여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설날 제사상을 준비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있는 듯 그려낸 세시 풍속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인가? 설날에 흰 떡국을 먹는 것은 지난해 모든 묵은 기억들을 잊고 새해를 마지하자는 다짐으로 아무것도 넣지 않은 흰 빚은 떡국을 먹는 것이고, 떡가래를 길게 늘려 뽑는 것은 생명이 길게 늘어나라는 뜻이고, 떡국이 둥근 모양은 엽전을 닮아서 새해에 재물이 풍족하기를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에 지난해의 아쉬웠던일 서운했던 모든 일을 깨끗이 잊고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다. 대한민국어린이헌장 개정을 위해 새싹회 윤석중 회장님을 기초위원으로 모셨는 데 그 분 말씀 중에 한 해를 시작하는 ‘설날’이 “지난 한 해를 보내는 게 서러워서 설날이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해가 낯설어서 설날인가? 다시 일어서 출발하자는 일어설 날이라서 설날인가?” 라고 하신 것이 기억이 난다. 성경 말씀(잠언 17:1)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성찬을 차려놓고도 다투는 집보다 나으니라(Better a dry crust with peace and quiet than a house full of feasting with strife). 가난하여 비록 집안에 먹을 것이 딱딱한 빵 껍질(crust) 몇 조각밖에 없다 하여도 만일 가정이 평화롭고(quiet) 가족들이 화목하다면, 먹을 것이 산같이 쌓였어도(full of feasting) 서로 다투고(strife) 미워하는 가정보다 낫다”는 말이다. 비록 부유하여도 부모가 서로 싸우고, 형제 사이에 다툼이 있다면 그곳은 가정이 아니라 지옥일 것이다. 돈으로 좋은 집을 살 수는 있어도 진정한 가정을 살 수는 없다. 우리 선조들은 화목한 가정은 효(孝)로부터 출발한다고 가르쳤다. 일본에 충(忠)이 있고, 중국에 의(義)가 있다면,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의 근본으로 효를 가르쳐왔다. 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최고의 덕목이며 가치다. 효란 부모님을 잘 섬기는 일을 말한다. 사람이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효는 돌아가신 뒤에도 살아계실 때처럼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효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했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마을에 살지 못하고 쫓겨났다. 오래전의 일이다. ‘도전과 응전’으로 잘 알려진 아놀드 토인비가 한국을 방문하고 파고다 공원을 들렀을 때, 엄마 심부름을 온 손자가 식사하시라고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의 팔을 잡아끄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는 “비록 한국이 지금은 전란으로 폐허가 됐지만, 이 나라는 머지않아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에 이르는 한국의 효(孝) 사상과 가족제도를 관찰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차 한국이 인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 사상 일 것이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지고 가야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 문화다”(노규수의 조화와 질서의 미학). 그러나 세계의 석학이 부러워했던 한국의 효가 지금도 우리의 중심 가치인가에 대해 누고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효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효는 대를 이을 수 없을 것이며 효는 더 이상 한국을 대표하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가치로 보존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 대한 효 교육은 말이나 훈계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는 부모의 행동으로부터 학습되는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효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란 것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보다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이 효도의식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님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피땀 흘리면서 자식들을 키워 주신 모습을 매일 보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무는 잠잠하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를 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고 한다. 부모가 백년 천년 살 수도 없는 것을 안다면 효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자식들의 과제다. 유니세프에서 일했을 때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어느 공무원 가정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집은 좁고 초라했지만 사람들이 출입하는 거실 입구에 침대를 마련해 놓고 거동이 불편하신 노모를 모셨는데, 자연스럽게 출퇴근 하는 아들이나 학교에 다니는 손자들이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인사를 드리며 손님이 오고 가더라도 맨 먼저 노모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효란 어른에 대한 존경이며, 배려이며, 순종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초대를 한 공무원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날 직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노모에게 들려드리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노모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던 아들의 진지하고 효성스러운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설날이 화목한 가정을 위해 부모거 효를 가르치고 자녀들이 효를 배우는 날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운 이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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