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컬럼80 내려놓고 비우기 | 운영자 | 2025-0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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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비우기 부처님이 내려놓음에 대해 비유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강을 만났으나 다리도 배도 없었다. 그는 주위의 나뭇가지를 모아 엮어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강을 건너 반대편 강둑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뗏목은 정말 쓸모가 많구나. 이렇게 버리기는 아까우니 짊어지고 다니다가 다음에 다시 강을 만나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매우 어리석다. 왜냐하면 내려놓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올바른 행동은 뗏목을 모래톱 위에 올려놓거나 잔잔한 물가에 정박해 두었다가 다시 이 강을 건널 때 쓰는 것이다. 뗏목을 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아 좋은 것이라도 내려놓아야 한다. 하물며 좋지 않은 것은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 세상 사람들의 번뇌는 대부분 등에 짊어진 짐의 무게 때문에 생긴다. 누구나 많은 짐을 지고 있다. 짐이 너무 무거우면 어떻게 먼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겠는가. 인생 최대의 깨달음은 바로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는다. 장옌(章岩)의 ‘어른의 공식’에 나오는 글이다.
지난주에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인근 재래시장을 찾아갔다가 황당한 일을 그것도 겹쳐서 당했다. 처음 보는 젊은 철물점 주인이 말끝마다 반말을 해댔지만 잘 참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떤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분을 도우려고 내가 애를 쓰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앞뒤 없이 무례한 부탁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한 주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주말에 마음을 비우려고 되짚어보니 시장에서 처음 본 상점 주인이 운동복 차림의 나를자기보다 더 젊게 보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화를 걸어온 지인은 그 일에 기댈 언덕이 나 외에 없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 두 분들로부터 나는 부처님의 "마음을 비우고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의 유익함"을 배웠다. 버리는 것이 있어야 얻는 것이 있고, 내려놓는 것이 있어야 거두는 것이 있다. 가능한 손에 많은 모래를 쥐려고 힘을 주어 꼭 움켜쥘수록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 손바닥을 펴서 적당히 오므리면 모래는 그대로 손바닥 위에 남아 있다. 어떤 것은 꼭 붙잡고 내려놓지 않으면 영원히 다른 것을 얻을 수 없다. 꽉 찬 냉장고는 냉장고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때때로 마음을 다스려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남겨야 한다. 갓난아기라도 더 좋은 장난감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 꼭 쥐고 있는 장난감은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계속 취하지만 결국에는 잃고,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 버리지만 결국에는 얻는다.
구름은 나그네와 같아서 뭉게뭉게 피어올라 마음대로 떠다닌다. 높은 산을 만나면 휘돌아 넘어가고,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에 몸을 맡기기 때문에 사방으로 거침이 없다. “인생에서 짊어질 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가장 무거운 짐”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했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 그 모든 짐을 지고 일생을 걷는 길 보다는 내려놓고 비우며 걷는 길이 더 쉽고 더 멀리 가는 길일 것이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어떤 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고, 어떤 이는 두꺼운 옷에 장화를 신은 채로 달리고, 어떤 이는 가벼운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면 세 사람 중에 누가 우승할 것인가는 묻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알고 있다는 것과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쉽게 잡는 방법으로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나 과일을 넣어둔다고 한다. 먹이에 유인된 원숭이는 항아리 안에 손을 넣고 먹이를 꽉 움켜쥔다. 먹이를 움켜쥔 손이 항아리의 좁은 주둥이에 걸려 빠지지 않는 사이 사냥꾼에게 잡힌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려놓아야 할 마음의 무거운 짐은 아마도 내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아닐까 싶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염려는 아닐지라도 건강이나 자녀, 가정이나 직장에 대한 크고 작은 염려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걱정 가운데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어고, 30%는 이미 일어났던 일이며, 22%는 너무나 사소해서 무시해도 되는 염려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머지 4%는 우리가 해결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만 4%만 어찌 할 수 없는 염려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마라. 내일의 염려는 내일에 맡기라.”고 하셨다. 걱정은 흔들의자처럼 그 자리에서 맴을 돌고 우리를 한 발도 앞으로 옯기지 못한다. 염려와 함께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아마도 분노일 것이다. 분노는 우리가 그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면 때로는 평생의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영어의 anger는 분노라는 뜻이고 anger 앞에 d를 넣은 danger는 위험이란 말이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한 행동이나 말이 위험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길가다가 어깨 부딪혔다고 폭행하고 화난다고 국보 숭례문을 불태우는 흉흉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이 분노 관리, 감정 관리에 실패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분노조절 실패에 기인한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는 한국인의 화병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들었다.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아니하고 같은 잘못을 거듭 저지르지 않는다(不遷怒 不二過)는 명언이 있지만, 공자도 이같이 할 수 있는 자는 3천 제자 중 안회(顔回 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은 남에게 분을 참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는 말이다. 분노의 감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일생을 지고 가야 할 짐으로 남는다. 후한 시대 최원이라는 명성을 날리던 서예가는 분을 참지 못하고 괴한에게 죽임을 당한 형 대신 복수를 하고 그 대가로 오랜 기간 옥에 갇혀 살아야 했다. 감형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자 지난날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을 글을 써서 쇠붙이에 새겨 책상 오른쪽 두었다. 이것이 좌우명(座右銘)이란 말이 세상에 나오게 된 유래다. 1990년 만델라가 27년간 갇혀있던 감옥에서 풀려나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원망과 복수심을 내려놓고 고통을 주었던 적들을 용서하고 화해하였다. 1993년 세계는 그에게 노벨평화상으로 화답하였다. 분노란 불길과 같아서 부채질하면 더욱 타오르지만, 참으면 참을수록 잦아드는 것이 또한 분노다. 분노는 없앨 수는 없어도 잠재울 수는 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짊어진 무거운 짐과 함께 길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생의 가을인 저문 강에 다다르게 된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내일의 염려로 두려움에 같혀 오늘을 보낼 것이 아니다, 어제는 지난밤으로 끝이 나고, 오늘은 전혀 다를 새로운 날이다. 내가 염려와 분노로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애타게 그리워하던 내일이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법정스님의 애송시 나옹선사의 ‘창공은 나를 보고’는 또한 내가 나의 애송시이기도 하다. 염려와 분노가 나를 끌고 가지 않는 오늘을 위하여. 백운 이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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