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컬럼67 애국자 | 운영자 | 2024-1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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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서야담( 溪西野談)에 재상 유성룡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유성룡(柳成龍)에게는 바보 숙부(痴叔·치숙)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콩과 보리를 가려 볼 줄 모를 정도로 바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숙부가 조카 유성룡에게 바둑을 한판 두자고 했다. 유성룡은 당대 조선의 국수(國手)라 할만한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아버지 항렬 되는 어른의 말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두었는데, 막상 바둑이 시작되자 유성룡은 바보 숙부에게 초반부터 몰리기 시작하여 한쪽 귀를 겨우 살렸을 뿐 나머지는 몰살당하는 참패를 했다. 바보 숙부는 대승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며 "그래도 재주가 대단하네. 조선 팔도가 다 짓밟히지는 않으니 다시 일으킬 수 있겠구나." 라고 말했다. 이에 유성룡은 숙부가 거짓 바보 행세를 해 왔을 뿐, 이인(異人)이라는 것을 알고 의관을 정제하고 절을 올리고는 무엇이든지 가르치면 그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숙부는 아무 날 한 중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자고 할 것인데, 재우지 말고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했다. 실제 그날, 한 중이 와서 재워주기를 청하자 유성룡은 그를 숙부에게 보냈는데 숙부는 중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네 본색을 말하라고 해 그가 풍신수길(豊臣秀吉) 즉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치러 나오기 전에 유성룡을 죽이려고 보낸 자객이라는 자복을 받았다. 유성룡은 숙부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의정의 자리에서 사실상 국난을 극복하는 주역이 되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고 부르던 그, 이인(異人)이 위기의 조선을 구했다는 것이다(이희준(李羲準 1775년~1842년)의 기담집(奇談集) ‘계서야담’(溪西野談)에서 발췌) 묵자(墨子)의 공수(空輸)편에 묵자와 공수반(公輸般)이 초나라 왕 앞에서 가상의 전투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강국 초나라가 약국 송나라를 침범하여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자 열흘길을 달려 초나라에 이른 묵자는 초나라 왕에게 전쟁의 불가함을 아뢰고 마침내 초의 송나라 침입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큰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송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만난 묵자가 마을 여각(閭閣)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하려 하였으나 문지기가 그를 내쫓아버렸다. 송나라를 구하기 위해 열흘 밤낮을 달려가 초나라의 침략을 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리 없는 문지기에게 문전 박대를 당했다.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으면서도,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국민을 염려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지도자를 염려하는 나라가 되었고, 사회적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묵자(墨子)는 제자에게 말했다. “파리와 모기는 하루 종일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소리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들이 내는 소리는 사람들을 괴롭게 할 뿐이다. 반대로 수탉은 아무 때나 울지 않는다. 날이 밝기 시작할 때 우는데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우자고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불이 나니 불을 꺼야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른다. 우리가 바라는 사람은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며 요란하게 불을 꺼야 한다고 설치는 거창한 애국자들보다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열흘 길을 달려가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우는 서애 유성룡과 같은, 나라의 위기에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고 미리 준비하여 위기의 나라를 지켜 낸 명재상 유성룡을 닮은 애국자를 기다린다. 김구 선생의 호 백범(白凡)은 당시에 사회적으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라는 뜻으로 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라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자는 뜻이었다.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서 노동일을 할 때 “장차 나라가 독립하여 우리의 정부가 생기면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며,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문화국이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라고 했다. 날이 새면 날마다 신탁과 반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로 나눠져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던 암울한 역사를 너머 그는 나라의 미래를 부가 강한 나라나 무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대국을 꿈꾼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다. 보스턴 근처에 있는 콩코드라는 한적한 마을은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을 대상으로 일어난 미국 독립전쟁의 발상지다. ‘콩코드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이 일어났었다. 여기 에 첨탑처럼 서 있는 뾰족한 기념비는 미국과 독립과 자유의 상징이다. 그리고 미국의 지성 랠프 월도 에머슨의 숭고한 애국 충정의 표현인 <콩코드 찬가>가 새겨져 있다. “이 푸른 언덕 위에 고요한 시냇가에 오늘 우리들은 기념비를 세운다 선조들과 같이 우리 자손도 간 뒤에 기념이 그 공적에 보답할 수 있도록.” 어설픈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갈라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목을 조르는 파리와 모기들처럼 우리나라에 정치가는 드믈고 정치꾼들만 들끓는다 하여도 IMF 금융위기에 아이 돌 반지까지 들고 나가 줄을 섰던 나라, 붉은 셔츠를 사서 입고 밤새도록 ‘대한민국’을 외치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뜨거운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역동적인 나라 대한민국은 결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백운 이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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