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컬럼97 화에 대하여 | 운영자 | 2025-07-07 | |||
|
|||||
영국 역사상 최고의 검술사로 명성을 쌓아온 ‘오말’이라는 고수에게는 30년 이상 우위를 겨루어온 마상막하의 강력한 라이벌이 서로의 검술 실력을 다투던 중 한 사람이 먼저 말에서 떨어지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단 한 칼이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순간 궁지에 몰린 검술사가 오말의 얼굴에 침을 뱉고 말았다. 예기치 않은 상대 검술사의 무례한 행동에 놀란 오말은 즉시 검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결투는 여기서 끝내고 다음에 다시 겨루기로 합시다.” 어리둥절해진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오말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30여 년간 검술을 통해서 나 자신을 연마해왔습니다. 나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화가 났을 때는 절대로 검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나는 숱한 검술 시합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한국 캐품).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말이 있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참을 인(忍)자 셋이면 화병이 생긴다고 한다. 화를 끝까지 가슴속에 묻어두기만 하면 정신병에 걸리기 쉬우니 화를 참는 것보다 터뜨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쁨은 기다리면 불어나고 화는, 기다리면 줄어든다. 누가 나에게 주는 귀중품을 내가 받으면 내 것이 되고 받지 않으면 그대로 상대방의 것이 된다. 누가 나에게 앙잿물을 마시라고 준다고 할 때. 받아 마시면 내 몸은 상하지만 받지 않으면 양잿물은 상대방의 몸을 해친다. 화도 마찬가지다. 누가 내게 화를 냈으나 그 화를 내가 받으면 내 것이 되지만 받지 않으면 그 화를 낸 사람의 것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의 외과 의사였던 프리드먼이 처음 사용한 A타입 인간이란 Anger(분노)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A타입 인간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그 성격이 조급하고 경쟁적이며 항상 서두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자주 화를 낸다. 이들은 또한 좁은 공간에 갑자기 끼어드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에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초 어느 일요일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 성당에서 요시프 브로즈라는 복사(服事)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를 돕다가 실수로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신부는 많은 신도들 앞에서 화를 벌컥 내면서 “당장 여기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고 고함을 질렀고 그 말대로 소년은 다시는 성당으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성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고슬라비아의 공산당 독재자 ‘티토’가 되어 돌아왔다.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고 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현인이다. 한때의 분함을 참으면 100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장자의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수제자 안회(顔回)는 자신의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멈출 줄 알았던 인물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화를 참는 사람보다 그 화를 남에게 옮기지 않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옮기지 말고, 한 번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말라(不遷不怒不二過)는 명언을 새겨두어야 한다.
눈 마주쳤다고 사람 죽이고, 어깨 부딪혔다고 폭행하고, 화난다고 국보 숭례문을 불태우는 흉흉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은 분노 관리, 감정 관리에 서투르다는 말을 듣는다. 이 모든 것이 분노조절 실패에 기인한다. 정신의학의 권위자 이시형 박사는 한국인의 ‘화병’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들었다. 영어의 anger는 화라는 뜻이고 anger 앞에 d를 넣은 danger는 위험이란 뜻이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한 행동이나 말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후한 시대 명성을 날리던 최원이라는 서예가는 그의 형이 괴한에게 죽임을 당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복수를 하고 말았다. 그 대가로 오랜 기간 옥에 갇혀 살아야 했다. 훗날 감형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자 지난날을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을 글을 써서 쇠붙이에 새겨 책상 오른쪽 두었다. 이것이 좌우명(座右銘)이란 말이 세상에 나오게 된 유래다. 2022년 대림동 중국 동포의 살인사건처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충격을 가하는 묻지마 살인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화란 불길과 같아서 부채질하면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반대로 참으면 참을수록 잦아드는 것이 또한 화다. 그러므로 분노는 없앨 수는 없어도 잠재울 수는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은 화를 인내로 견뎌낸 사람들이다. 화에 대해서 네카(BC 4-65)는 “화는 부메랑 같아서 화낸 사람에게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틱낫한 스님도 그의 저서 ‘화’ 에서 “화를 벌컥 내는 건 불타는 석탄 한 덩이를 손에 꽉 쥐는 것과도 같다. 상대방에게 던지기 전 불에 데는 사람은 그 자신이다.”고 말했다. 때로 화가 부글부글 끊어 올라 폭발하려는 그 순간 호흡을 멈추고 분노의 감정을 가라앉히면서 기도하듯 천천히 숫자를 열까지 세어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입을 열기 전에 마음속으로 일단 열까지 숫자를 세다 보면 상대방은 당신을 굉장히 사려 깊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앞뒤 없이 밉다고 화를 내는 것은 “생쥐 한 마리를 잡으려고 자기 집을 모두 태우는 것과 같다.“는 우리 속담이 있고, “수탉이 지붕에 올라가 큰소리로 홰를 칠 때 잡히기 쉽고, 사람이 화를 내면 당하기 쉽다.”는 미얀마 속담도 있다. 화란 불길과 같아서 부채질하면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반대로 참으면 참을수록 잦아드는 것이 또한 분노다. 그러므로 분노는 없앨 수는 없어도 잠재울 수는 있다. 위대한 인물들은 분노를 인내로 견뎌낸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자는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폭발시키고는 평생을 비참한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팔뚝을 걷어붙이고 멱살을 잡고 한바탕 고함을 치고 나면 비록 한때의 통쾌함은 있겠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쓰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한국사회가 헝그리(Hungry) 사회에서 앵그리(Angry)사회로 전환됐다고 말한다.‘남’은 없고‘나’만 있는 자기중심주의가 팽배하여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방해받거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면 참지를 못하고 화를 내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현실은 바꿀 수 없다.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은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더욱이 긍정의 눈으로 볼 때, 상황은 역전된다. 상황뿐 아니라 결과까지 달라진다. 분노도 화도 마찬가지다. 누가 나에게 폭언이나 폭행처럼 화나게 하는 행동을 할 때 내가 즉각적으로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냉정하게 판단하고 화를 참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내가 어떤 눈으로 상황을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화는 양잿물과 같아서 퍼붓는 대상보다는 그것이 담긴 그룻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조언과 “수탉은 지붕위에 올라가 홰를 칠 때 잡히기 쉽고, 사람은 화를 내면 당하기 쉽다.”는 미얀마 속담은 함께 새겨두면 화를 참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토마스 제퍼슨은 “화가 나면 말을 하기 전에 10까지 숫자를 세어라. 무척 화가 나면 100까지 세어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분노가 가라앉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키모인들은 분노를 느끼면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걷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걷는 것만큼 빨리 감정을 가라앉히고 풀어주는 행동은 없다는 그들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옛 어른들은 화가 났을 때는 먼저 심호흡을 하고, 물을 한잔 마시라고 일러주셨다. 백운 이배근 |
댓글 0